공기의 연금술(토머스 헤이거/홍경탁 옮김/반니)
과학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예시로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은 아마 '전쟁'일 것입니다. 전쟁은 과학기술을 발달시켰고, 전쟁 중 개발된 무기 기술이나 다른 여러 과학 지식들은 전쟁이 끝난 뒤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을 돕는 기술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특히 20세기 초, 중반의 세계 1차, 2차 대전이 대표적이지요. 물리학계에서 양자역학 등 입자물리학이 급속도로 발전하며 원자폭탄과 원자력 발전이라는 양날의 칼로 대중에게 자신을 알리기 이전에 화학계에서도 엄청난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바로
'암모니아(고정 질소)의 대량 생산'입니다.
카를 보슈
프리츠 하버
암모니아는 원래 흙에서 뿌리혹박테리아나 번개에 의해 자연적으로 생산되는 분자입니다. 식물에게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영양소이지만, 농작물을 한 두해 키우고 나면 암모니아 생산 속도를 소비 속도가 뛰어넘어 버려 암모니아가 동나게 됩니다. 이 때문에 옛 농부들은 거름 주기, 돌려짓기, 콩 심기, 휴작 등의 방법을 동원해 부족한 암모니아를 보충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산업 혁명 이후 인구가 서서히 늘어나기 시작하자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줄었는데 소비량은 증가하게 되었고, 이에 비료의 필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쓰인 비료가 바로 '초석', 즉 질산암모늄입니다. 질산암모늄은 암모니아와 질산이 반응해 만들어지는 것으로, 효과 좋은 비료이자 폭발력이 좋아 전쟁에서 폭탄으로도 많이 쓰였습니다.
암모니아를 대량 생산하는 기술은 독일의 두 과학자, 프리츠 하버와 카를 보슈가 개발해냈습니다. 당시 독일은 엄청난 초석 수입국이었고, 전쟁에서의 폭탄과 농사 비료로서 중요했던 질산암모늄을 불안정한 경로인 해외로부터의 수입 대신 직접 생산하는 기술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고 합니다. 아이디어는 간단했습니다. 대기 중 약 78%를 차지하는 질소 기체(N2)를 고온고압의 공정에서 촉매를 사용해 암모니아(NH3)로 합성하면 됩니다. 하지만 적합한 촉매를 찾는 것에서부터 엄청난 고온/고압을 견딜 수 있는 공정 건설까지 수많은 실패 끝에야 성공할 수 있었던, 어려운 과제였습니다. 동시에 하버와 보슈가 아니었다면 다른 누군가가 아마도 성공했을 법한 당시 화학계의 유명한 난제였죠. 하버는 촉매 등 화학 부분의 기술을 완성시켰으며 보슈는 하버가 썼던 작은 실험도구들을 실제 공장에서 대량 생산이 가능한 정도로 크게 제작하는 기계 관련 부분을 맡았습니다. 그리고 이 공장은 비료 생산과 더불어 독일의 폭탄 제조에 크게 기여하면서 이후 2차 대전에까지 영향을 미쳤고, 이에 세계사를 바꾸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이 책은 프리츠 하버와 카를 보슈의 화학 인생사이자, 19세기 말에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화학의 발전 및 영향에 대한 역사책입니다. 책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현대 화학산업을 창조한 장본인이라는 것이다. 두 사람의 연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하다. 이들 덕분에 우리가 굶주리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들이 발견한 것에 대한 생태학적 영향을 이제 막 이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버와 보슈는 화학 비료로 수억 명의 사람을 살렸고, 폭탄 제조로 수백만 명의 사람을 죽였습니다. 이제는 좋게만 보였던 화학 비료에서도 문제점이 발견되어, 다시 '유기농 농법'으로 돌아가고 있지요. 암모니아 합성 기술의 양면성이 두 사람의 삶에도 영향을 미친 건지 하버와 보슈 모두 잘나가던 젊은 시절과는 다르게 우울한 말년을 보냈습니다.
인간은 농사짓는 기술을 개발해 문명을 일구어 냈고, 전쟁하는 기술을 개발해 문명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시작과 끝은 언제나 과학기술과 함께하겠군요.